IMF로 사업이 무너진 뒤 인터넷 쇼핑몰 창업을 시작한 이야기 [OUR K STORY #1]

강서종로의료기 매장과 1990년대 컴퓨터를 배경으로 IMF 이후 미국 사업자 창업 스토리를 소개하는 OUR K STORY 블로그 썸네일

IMF가 우리 가족의 인생을 바꾸다

1990년대 후반, 저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당시 남편은 '대준메디칼'이라는 의료기기 회사를 운영하며 미국에서 의료기를 수입해 병원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을 응원하는 평범한 아내였고,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상품을 등록하고 주문을 확인하며 전국으로 택배를 보내는 쇼핑몰 대표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민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남편의 사업 역시 직격탄을 맞으며 순식간에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사업을 해야 해"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던 남편은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제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직접 병원을 찾아다니며 영업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사업을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새벽기도를 통해 남편의 마음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또 한 번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앞으로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세상이 올 거야." 사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미국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영주권 발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보다 한발 앞선 미국 인터넷 시장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것입니다.

당시 컴퓨터 전원도 제대로 켤 줄 모르던 저는 "컴퓨터에서 어떻게 물건을 사? 그게 말이 돼?"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이 당연하지만, 그 시절에는 차가운 기계 안에 가게를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확실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돈 없이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

IMF로 빚더미에 앉은 우리에게는 쇼핑몰을 구축할 자금조차 없었습니다. 남편은 용산에서 웹페이지를 만들던 친구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고, 고맙게도 무료로 첫 쇼핑몰을 제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디자인도 투박하고 기능도 거의 없는 초라한 홈페이지였지만, 그 작은 사이트가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당시 온라인으로 의료기를 판매하는 곳은 '바이메드' 정도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시장은 아직 작았지만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우리는 그 변화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가 인터넷 쇼핑의 초창기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이후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며 온라인 의료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종로의료기 라는 이름의 힘

쇼핑몰 이름을 고민하던 중 남편이 제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답했습니다. "의료기 하면 종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냥 종로의료기로 하자." 그저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지은 상호였지만, 이 이름 하나가 온라인 시장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에게 '종로'는 의료기 전문 상가가 밀집한 신뢰의 공간이었습니다. '종로의료기'라는 명칭은 고객들에게 오프라인 전문점과 같은 강력한 신뢰감을 주었고,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이름 하나가 우리 쇼핑몰의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잘 지은 이름 하나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자 광고'라는 사업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업주부가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하다

우리는 서울 강서구에 작은 매장을 얻어 온·오프라인 영업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도 남편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품 등록하는 법을 처음 배우고, 주문서를 출력하고, 물건을 포장하고, 택배를 보내고, 고객 전화를 받았습니다.

직원 한 명 없이 모든 일을 직접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쇼핑몰 운영의 모든 과정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경험이 이후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저는 남편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IMF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가 없었다면 저는 평생 전업주부로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IMF는 남편의 사업을 무너뜨렸지만, 저를 사업가로 만들었습니다. 작은 쇼핑몰 하나가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저의 사업 인생을 시작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네이버(NAVER)로부터 걸려온 전화

저의 사업 인생은 그렇게 '종로의료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쇼핑몰을 만들었다고 해서 주문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홈페이지는 생겼지만 어떻게 해야 고객들이 우리 쇼핑몰을 찾을 수 있을지, 그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입니다." 당시만 해도 네이버는 지금처럼 유명한 회사가 아니었고, 저희 역시 야후와 다음, 엠파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네이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회사가 훗날 대한민국 검색 시장의 판도를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네이버에서 저희에게 전화를 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창업노트 #1

위기 속에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IMF는 우리 가족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동시에 인터넷 쇼핑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업은 안정된 시기보다 변화가 시작될 때 더 큰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신뢰를 주는 상호는 최고의 마케팅입니다.

'종로의료기'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한 번 들으면 쉽게 기억했고, 전문적인 의료기 업체라는 신뢰를 주었습니다. 상호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고객의 첫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완벽한 준비보다 먼저 시작하는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쇼핑몰을 만들 돈도, 온라인 사업 경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방법을 찾아 한 걸음 내디뎠고, 그 작은 시작이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창업은 거창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작은 실행을 시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저는 IMF를 통해 배웠습니다.


다음 이야기

대준메디칼이 무너지며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것은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었습니다. 그 절망 속에서 시작한 작은 쇼핑몰은 어떻게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인터넷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저는 '검색이 곧 매출'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네이버가 작은 의료기 쇼핑몰에 직접 전화를 걸어오던 인터넷 초창기, 다음 편에서는 야후, 다음, 엠파스 그리고 막 태동하던 네이버를 활용해 검색 시장을 공략하며 전국으로 사업을 키워 갔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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