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의료기 사업과 호황을 맞은 시계사업 [OUR K STORY #20]

하와이 오아후 돌 플랜테이션 열대 정원에서 야외활동을 즐기는 모습


여행을 떠나도 노트북은 닫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의료기 사업 은 좀처럼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어떻게든 매장을 살려보겠다고 밤을 새워 영어를 공부하고, 당뇨신발 Fitter 라이센스까지 따내며 안간힘을 썼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매장 문을 열 때마다 진열대 위에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은 채 팔리지 않는 의료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비싼 매장 임대료와 기본 유지비는 날마다 숨통을 조여왔고, 끝없는 행정 서류의 굴레는 남편과 둘이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터널 같았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하던 바*워치 사업은 너무나 잘되었습니다.

미국 매장이 적자와 서류 문제로 속을 태우는 동안에도, 한국의 시계사업 은 고맙게도 호황을 누리며 매달 든든한 수익을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던 한국에서의 결실마저도, 정작 미국 매장의 비싼 임대료와 묶여버린 대금을 메우는 '밑 빠진 독의 물'로 사정없이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미국의 적자 구조를 메우기 바빴기에, 마음속 깊은 곳의 허탈함과 불안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우리는 '메리어트 타임쉐어'를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부동산처럼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고, 평생 전 세계 고급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 분양 설명회장을 찾았습니다. 좋은 조건으로 휴양지 지분을 소유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그곳에서 계약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일 년에 두세 번씩 하와이나 뉴욕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는 마치 제주도처럼 비가 내리다가도 이내 해가 비추는 변덕스럽지만 매력적인 날씨였습니다. 마치 사이즈가 훨씬 더 커진 제주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콘도형 리조트에 머물며, 아이들은 신나게 스노클링을 하고 오아후 폴리네시안 민속촌을 구경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아후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를 구경할 때도 미국은 땅이 넓어서 그런지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습니다. 마을과 섹션마다 부지가 너무 넓고 길게 이어져 있어 걸어서는 다 돌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이동하며 곳곳을 둘러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와이 오아후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공연


오아후에서 일본인이 대대로 운영한다는 작은 스시집에 들어갔습니다. 한 점 한 점 입에 넣을 때마다 "이게 진짜 스시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그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밤에 나가 본 호텔 자쿠지에서 휴식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손에 잡힐 듯 쏟아져 내리던 엄청난 별들과 맑은 공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도 저는 손에서 전화를 놓지 못했습니다. 쏟아지는 서울에서 걸려오는 업무 착신 전화 때문에 식구들과 이동하면서도 계속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뉴욕에서의 크리스마스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재건 중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 현장


캘리포니아에서는 차만 타고 다녔는데, 뉴욕은 한국처럼 밤에도 사람들이 거리거리를 걸어 다녔고, 도로에는 빽빽한 교통체증과 택시들이 넘쳐났습니다.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뒤 재건 공사가 한창이던 그라운드 제로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보았고 유명한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가서 아주 유명한 뮤지컬 쇼를 관람하기도 했습니다.지하철에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커다란 쥐가 돌아다녀 낯선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뉴욕 맥도날드는 캘리포니아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맥도날드 매장자체가 캘리포니아와는 다르게 생겼고 뭔가 서울에 온 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나 보던 높은 빌딩 숲 사이로 강하게 불어오는 뉴욕의 칼바람은 가히 최고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날씨만 생각하고 코트를 챙겨가지 않았다가, 머리가 꽁꽁 얼어붙어 깨질 것 같은 추위에 결국 급히 갭(GAP) 매장에 들어가 코트와 모자를 사 입어야 했습니다. 조금 걷다가 너무 추워 빌딩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다시 조금 걷다가 또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뉴욕에 왔으니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싶었지만, 거기에 가려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야 한다기에 살인적인 추위 앞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렇지만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만큼은 꼭 가보고 싶어 가족들과 함께 향했습니다. 거대한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하얀 석고상과 조각상들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석고 조각상


하지만 그 여행에서도 저는 하루 종일 밖에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어떤 날은 남편과 아이들만 관광을 나가고, 저는 호텔 방에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고객 문의에 답하고 주문을 확인하고, 거래처와 통화했습니다.

밤이 되면 호텔 앞 리커스토어에 내려가 간단한 먹거리를 사 와 야식을 먹으며 다시 일을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급 타임쉐어 콘도를 소유하고 하와이와 뉴욕을 오가며 브로드웨이 쇼를 즐기는 번듯하고 여유로운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화려한 휴양지의 거실에서도, 아늑한 뉴욕의 호텔 방에서도 제 손에는 늘 노트북과 핸드폰이 들려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휴가지에 서 있었지만, 속은 타들어가는 적자와 업무 중압감에 묶여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사업이라는 무게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절의 여행은 저에게 여유가 아닌 또 다른 일터였습니다.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가족과 여행을 와서도 전화를 받고, 호텔에서 노트북을 켜는 것이 성공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저는 아름다운 풍경보다 주문서와 고객 전화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때는 바쁘게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업 노트 #20

겉보기에 화려한 휴식 뒤에 숨은 실질적 손익 구조를 경계해야 합니다.

남들의 눈에는 고급 타임쉐어 콘도로 가족 여행을 다니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내부 자금이 적자 매장을 메우는 구조라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냉정하게 구조조정이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잘되는 사업과 안되는 사업의 자금 흐름(Cash Flow)을 엄격히 분리해야 합니다.

잘되는 사업(한국 바*워치)의 이익으로 못 버티는 사업(미국 의료기)의 적자를 계속 메우는 구조는 결국 잘되는 사업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각 사업체의 손익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자금을 분리해야 사업 전체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업주 개인이 없어도 돌아가는 원격 위임 및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여행지에서도 노트북과 핸드폰을 놓지 못했던 것은, 당시 사업체의 주요 의사결정과 행정이 업주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주인이 자리를 비워도 돌아가는 시스템과 위임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다음 이야기

하와이의 푸른 바다와 뉴욕의 호텔 방에서도 노트북을 덮지 못했던 시간들… 

매장 적자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남편은 의료선교 봉사 현장에서 만난 선교사님과 뜻을 모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그것은 매장 판매를 넘어 남미로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시련으로 인해 이 일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이 일은 다음이야기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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