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직접 전화오던 시절, 키워드 광고로 의료기 쇼핑몰을 키운 이야기
지난 이야기에서 말씀드렸듯이 대준메디칼이 무너지며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것은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었습니다. '종로의료기'는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다시 일어서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쇼핑몰을 만들었다고 손님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매장 옆 작은 월세방에서 시작된 두 번째 인생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서울 강서구에 작은 의료기 매장을 열었지만 손님은 많지 않았고, 장사와 자녀교육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빚더미에 앉은 우리는 살던 아파트를 떠나 매장 바로 옆 작은 월세집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곧장 가게로 왔습니다. 가게 한쪽에 작은 상을 펴 놓고 숙제를 했고, 저는 손님을 맞았습니다. 손님에게 의료기 사용법을 설명하다가도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는 것이 제 하루였습니다.
몸은 늘 지쳐 있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만큼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야후와 다음, 엠파스의 시대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
그 무렵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가장 많이 이용하던 검색사이트는 야후, 다음, 엠파스였습니다.
제 하루는 야후와 다음, 엠파스의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해 검색 순위를 살펴보는 일로 끝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검색 1위를 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검색 순위 하나가 하루 매출을 바 꾸던 시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입니다" 연두색 로고의 신생 기업
그러던 어느 날, 이름도 낯선 신생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는 야후와 엠파스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빨강과 주황 계열의 로고를 쓰던 야후와 엠파스에 비하면 네이버는 연두색 로고를 쓰는 작고 낯선 신생 회사였습니다. 제 눈에는 그 연두색 로고가 조금 촌스럽게까지 보였습니다. '저런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우리 쇼핑몰을 등록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어 전화가 오면 중간에 끊기도 했고, 아예 받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포기하지 않고 며칠 뒤 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결국 저는 "공짜라는데 한번 등록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쇼핑몰을 등록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작은 회사가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검색 기업이 될 줄은 말입니다.
10원 단위로 다투던 초창기 키워드 광고 전쟁
하지만 당시 제 관심은 네이버의 미래보다 당장 주문을 만들어내는 키워드 광고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광고비를 미리 충전해 두면 고객이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광고비가 차감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광고가 곧 매출이었고, 광고가 멈추면 주문도 멈췄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종로의료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경쟁이 심하지 않았지만, 의료기 쇼핑몰이 하나둘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보니 동작구에도 '종로의료기'라는 이름을 쓰는 업체가 생겨났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키워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클릭당 100원을 걸면 상대는 110원을 걸었고, 우리는 다시 120원을 걸었습니다. 매일 아침 광고 순위를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혈압계, 혈당계, 가정용 의료기, 저주파 치료기 같은 인기 키워드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광고 단가는 계속 올라갔지만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종로의료기 본사', '종로의료기 전문' 같은 새로운 키워드를 직접 발굴하며 밤마다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광고비가 떨어지면 주문도 멈췄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광고 관리자 화면을 확인했습니다. 주문이 갑자기 뜸하다 싶으면 거의 틀림없이 광고비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습니다. 급하게 광고비를 다시 충전하면 거짓말처럼 주문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검색은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존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제게 했던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직접 병원을 찾아다니며 영업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사업을 해야 할 것 같아." 정말 그 말처럼 병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 속 네이버는 아직도 작은 회사입니다
우리 쇼핑몰이 조금씩 성장하던 그 시기, 네이버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회사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네이버가 대한민국 최고의 검색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국에 올 때마다 네이버를 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네이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기업이지만, 제 기억 속 네이버는 여전히 우리 쇼핑몰을 등록해 달라며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오던, 연두색 로고의 작고 친절한 신생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창업노트 #2
좋은 제품만으로는 판매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준비해도 고객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하면 주문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무엇을 팔 것인지뿐만 아니라, 고객이 어디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할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광고는 하는 것보다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에는 광고비가 소진되면 주문도 함께 멈췄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광고를 집행한 뒤에는 노출 순위, 클릭 수, 주문 변화 등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비용을 쓰는 것보다 어떤 키워드가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지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고객이 사용하는 검색 플랫폼은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 시절에는 야후, 다음, 엠파스가 중심이었고 네이버는 막 성장하던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네이버와 구글뿐만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다양한 SNS 플랫폼을 통해 고객이 상품을 찾습니다. 플랫폼은 바뀌어도 고객이 검색하는 길목에서 먼저 발견되어야 판매가 시작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다음 이야기
키워드 광고를 시작한 뒤부터 우리 매장에는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 밤사이 주문서가 쌓여 있었습니다.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주문이 들어왔고, 전국에서 손님들이 강서구의 작은 매장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산후조리원 개원 준비를 위한 의료기기 풀세팅부터 학교 양호실 납품, 가정용 의료기 판매까지. 우리 가족은 그렇게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강서구의 작은 매장이 어떻게 전국을 대표하는 의료기 쇼핑몰로 성장했고 그 많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가게 한쪽에서 숙제하던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이야기까지 '자고 일어나면 주문이 쌓여 있던 시절'을 다음 이야기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