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종로3가역 앞, 우리는 종로로 이사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서울 강서구의 작은 매장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첫 주문을 받고, 밤마다 ATM기로 향하며 빚을 갚아 나가던 희망찬 순간들을 들려드렸습니다.
오늘은 마침내 저희 부부가 감히 꿈으로만 그리던 대한민국 의료기의 메카, 종로로 매장을 이전하며 펼쳐진 새로운 도전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종로로 이전하기로 마음먹은 뒤 남편과 저는 종로 곳곳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우리가 가게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종로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지하철역 바로 앞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그런 우수한 조건의 매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자리는 종로 특유의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 때문에 너무나 비쌌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발품을 팔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깨끗한 가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종로구 익선동, 종로3가역 8번 출구 바로 앞이었습니다. 비록 기존 의료기 상가가 빽빽하게 모여 있는 메인 골목은 아니었지만, '종로'라는 대표 상징성과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이라는 뛰어난 접근성을 모두 갖춘 곳이었습니다.
그 가게를 처음 보던 날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길을 열어 주셨구나." 저희 부부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IMF로 모든 것을 잃었던 저희 부부에게 종로 이사 첫날의 감격은 꿈만 같았습니다. 가진 돈은 많지 않았지만, 종로3가역 앞의 그 작은 가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의 터전이었습니다.
텅 빈 매장을 하나씩 채워 가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직접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조금씩 의료기기를 들여오며 매장을 채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부족한 자금 때문에 진열할 물건을 마음껏 구매할 수 없어 넓어진 매장이 다소 휑해 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빈 공간이 너무 비어 보이지 않도록 제품의 빈 상자를 진열대 안쪽에 깔끔하게 채워 넣어 물건이 풍성해 보이도록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그것마저도 절실했습니다. 빈 상자 사이로 진짜 제품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저희는 종로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매일 밤 꿈으로만 그리던 일들이 눈앞의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전국
의료기의 중심, 종로
처음 종로에서 장사를 시작한 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의료기 도매상들이 가득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직접 걸어가서 사 올 수 있었고, 본사 직원들도 수시로 물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강서구 매장에서 운영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급이 편리해졌고 방문 손님도 훨씬 늘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양화대교를 건너 종로로 출근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은 지쳤지만 꿈꾸던 종로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행복했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보건소까지
그 무렵 대한민국에는 산후조리원 개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의 전화가 오면 산후조리원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세팅해 드렸습니다. 작은 아기 체중계부터 산모용 특수 침대까지 말 그대로 풀세팅(Full-setting) 방식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연달아 연락이 왔습니다. 새롭게 조성되는 양호실(보건실)에 필요한 의료기기 구성을 요청해 왔고, 보건소와 같은 공공 기관에서도 납품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때부터는 개인 고객뿐만 아니라 기관 물량까지 더해져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의료기를
팔면서 사람을 배웠습니다
혈압계, 혈당계, 저주파 치료기, 안마기, 족욕기, 산소호흡기, 환자용 침대까지 수많은 의료기를 취급했습니다. 사업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직원을 새로 채용해야 했습니다.
남편과 직원들은 가정 내 산소호흡기 설치를 위해 중환자가 계신 집을 직접 방문했고, 무거운 환자용 특수 침대를 조립하기 위해 서울 전역을 누볐습니다.
의료기를 팔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프고 힘든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의료기는 단순히 이윤을 남기기 위해 파는 일반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건강을 되찾는 간절한 희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의 도구였습니다. 그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창업노트 #4
접근성이 뛰어난 입지는 사업의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무조건 넓은 매장을 찾기보다 고객이 찾아오기 쉬운 지하철역 앞(종로3가역 8번 출구)을 선택했습니다. 오프라인 사업을 시작할 때는 매장의 절대적 크기보다 고객의 방문 편의성과 입지 가치를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가는 사업은 가격 경쟁이 아닌 깊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며 필요한 도움을 드리려 애썼습니다. 고객은 상품 자체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진정성과 신뢰를 보고 매장을 다시 찾습니다.다음 이야기
종로에서 사업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지만, 아이들을 강서구 매장에서처럼 가까이 두고 돌볼 수는 없었습니다. 장사는 더 커졌고 하루는 점점 바빠졌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 손에 맡겨졌고, 저는 눈코 뜰 새 없는 장사와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오래전에 신청해 두었던 미국 영주권 소식이 저희 가족에게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업과 가족, 그리고 새로운 미래 사이에서 저희 부부는 또 한 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업은 성공했지만 부모로서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