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종로로 진출했습니다

OUR K STORY #4

종로의료기가 가장 빛나던 시절


종로로 이전하기로 마음먹은 , 남편과 저는 종로 곳곳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우리가 가게를 구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지였습니다.

'종로에 있어야 한다.'

'지하철역 바로 앞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그런 조건의 가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자리는 종로의 특성상 하나같이 너무 비쌌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발품을 팔며 가게를 찾아다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있는 가격에 깨끗한 가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종로3가역 8 출구 바로 이었습니다.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하고 있었고 비록 의료기 상가가 모여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종로'라는 상징성과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는 뛰어난 접근성 모두 갖춘 곳이었습니다.

가게를 처음 보던 날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길을 열어 주셨구나.'

순간, 저희 부부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느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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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로로 이사했습니다.

종로로 이사하던 첫날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정말 대한민국 의료기의 메카인 종로에서 장사를 하게 되다니….'

IMF 모든 것을 잃었던 저희 부부에게는 꿈만 같았습니다.

가진 돈은 많지 않았지만, 작은 가게는 우리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없는 희망이었습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나씩 인테리어를 했고, 조금씩 의료기기를 들여오며 매장을 채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부족한 자금 때문에  진열할 물건을 마음껏 수가 없어 넓어진 매장이 비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공간이 휑해 보이지 않도록 박스를 진열대 안쪽에 채워 넣어 물건이 많아 보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그것마저도 절실했습니다.

점점 하나씩 물건을  채워 가며, 저희도 종로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꿈만 꾸던 일이 진짜 눈앞의 현실이 순간이었습니다.

 

전국 의료기의 중심, 종로

처음 종로에서 장사를 시작한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의료기 도매상이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걸어서 있었고,

본사 직원들도 수시로 물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강서구에서 장사할 때와는 비교도 없을 만큼 편리했습니다.

손님도 훨씬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양화대교를 건너 종로로 출근했고,

밤늦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됐습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종로에서 장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후조리원에서 보건소까지

무렵 대한민국에는 산후조리원 개원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가 오면 산후조리원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세팅해 드렸습니다.

작은 체중계부터 산모 침대까지.

그대로 풀세팅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새로 만드는 양호실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구성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보건소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조금씩 개인 손님뿐 아니라 기관에서도 우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정말 눈코 없이 바빴습니다.

 

의료기를 팔면서 사람을 배웠습니다

혈압계.

혈당계.

저주파 치료기.

안마기.

족욕기.

산소호흡기.

환자용 침대.

정말 수많은 의료기를 다뤘습니다.

사업이 걷잡을 없이 커지면서 우리는 직원을 새로 채용했습니다.

남편과 직원은 산소호흡기를 설치하기 위해 중환자가 있는 가정을 직접 방문했고,

무거운 환자용 특수 침대를 조립하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볐습니다.

의료기를 팔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픈 사람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의료기는 단순히 이윤을 남기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건강을 되찾는 간절한 희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삶의 도구였습니다.

사실을 알게 뒤부터 손님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다음 이야기

종로에서 사업은 점점 자리를 잡아 갔지만, 아이들을 강서구 매장에 있을 때처럼 

계속 매장에 데려와 돌볼 수는 없었습니다.

장사는 커져 갔고, 하루는 점점 바빠졌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 손에 맡겨지기 시작했고, 저는 장사와 

엄마 역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무렵, 저희 사업을 관심 있게 바라보던 형부가 나타났고, 오래전에 신청해 

두었던 미국 이민 승인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잘되던 종로의료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날 것인가.

우리 가족은 인생을 바꾸는 선택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고민하던 이야기와 미국 가족초청 영주권을 

받기까지의 과정그리고 종로의료기를 정리한 자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마침내 상가 건물을 구입하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OUR K STORY 연재

1편 - IMF가 남편 사업을 무너뜨렸지만, 전업주부였던 저를 사업가로 만들었습니다.

2편 - 야후와 엠파스만 바라보던 시절, 네이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3편 - 자고 일어나면 주문이 쌓여 있던 시절. 

4편 - 드디어 종로로 진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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