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건이라면 다 팔고 싶었습니다, ‘미제다’의 탄생
지난 이야기에서는 미국 현지 한인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비타민 쇼핑몰 비타US를 운영했다가 실패를 겪은 뒤,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미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대신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미국에서 좋은 물건을 찾아 한국 고객에게 연결해 주는 해외 구매대행 사업의 틀을 하나씩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타US의 실패는 분명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 실패 덕분에 저는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제다와 로스코리아, 이름에 담은 브랜딩의 꿈
사업을 시작할 때 저는 늘 이름부터 고민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종로의료기'라는 상호를 통해 이름 하나가 얼마나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한 번 듣고 기억할 수 있고, 무엇을 파는 곳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좋은 물건을 한국에 파는 곳. '미국 물건을 파는 곳', '미제 물건을 다 모아 놓은 곳'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다가 제가 직접 지은 이름이 바로 '미제다'였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할 쇼핑몰 이름이 정해지자 미국에서 사용할 회사 이름도 필요했습니다. 단순히 한국에서 들어온 주문금을 받고 미국에서 물건을 사서 보내는 역할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언젠가는 한국의 좋은 제품도 미국에 소개할 수 있는 다리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의 '로스'와 대한민국의 '코리아'를 합쳐 '로스코리아(LOSKOREA)'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직구가 없던 시절, 해외 구매대행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양제, 화장품, 의류, 신발, 가방, 생활용품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외 직구가 쉽던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미국 사이트가 많았고, 어렵게 결제에 성공해도 한국으로 직접 배송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위즈위드, 오렌지플러스, 아이하우스 같은 초기 해외 구매대행 업체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사업 모델을 연구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직접 좋은 물건을 찾아서 한국 고객에게 연결해 주면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고, 검수하고, 한국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대신해 준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에만 있던 미제다와 로스코리아의 사업 구상이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딸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비타US 실패 후 약 1년쯤 지나 저는 딸아이와 함께 다시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뵌 분은 친정엄마였습니다. 살이 많이 빠진 엄마는 손주들 중에서도 유난히 예뻐하시던 저희 딸을 보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너희랑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엄마의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저와 딸은 양천구 상가주택 옥탑방에서 지내며 친정엄마를 모셨습니다. 잠실에 살던 언니는 주말마다 음식을 싸 들고 찾아왔고, 옥상 평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미제다를 준비했던 기억보다 가족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이 먼저 생각납니다. 제 기억 속의 그 옥탑방은 단순히 새로운 쇼핑몰을 준비하던 작업실이 아니라, 가족들과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개발자와 함께 완성한 쇼핑몰 '미제다'
한국에 들어온 뒤 저는 예전에 종로의료기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셨던 개발자분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미국 물건을 한국에 파는 쇼핑몰을 만들고 싶어요." 이번에는 비타민만 판매하는 작은 사이트가 아니었습니다. 옷, 신발, 가방, 시계, 생활용품까지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욕심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저 둘이서 운영할 생각이었는데 처음부터 종합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규모가 얼마나 많은 손이 필요하고, 운영이 얼마나 복잡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인터넷 쇼핑몰을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었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니 현지 상품은 누구보다 잘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개발자분과 여러 번 만나 디자인과 기능에 대해 의견을 나눈 끝에 드디어 '미제다' 홈페이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었던 비타US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비타US는 제작 비용이 비싸고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았던 반면, 한국에서 만든 미제다는 훨씬 세련되고 빠르며 당시 기준으로 완성도 높은 쇼핑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시스템과 디자인은 한국이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구나.' 미국이 모든 면에서 앞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당시 온라인 쇼핑몰 환경만큼은 한국이 훨씬 세련되고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게다가 한국 PG사를 연결해 국내 고객들이 원화로 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미국 브랜드로 채운 종합 쇼핑몰
미제다가 완성되자 하나둘 상품 카테고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에는 홀리스터, 아베크롬비, 아메리칸이글, 갭, 게스 같은 당시 인기 브랜드를 넣었습니다. 액세서리에는 알마니, 게스, DKNY 같은 패션시계를 올렸고, 신발에는 어그부츠, 가방에는 코치백과 게스백을 넣었습니다.
나중에는 명품 가방까지 다뤄보고 싶었고, 미국 가정용품과 한국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생활용품도 함께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미국에서 살 수 있는 좋은 물건은 다 소개해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부터 규모를 너무 크게 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잘나가던 구매대행 사이트들을 보며 욕심이 생겼고, 어느새 제가 준비하던 쇼핑몰도 작은 전문몰이 아니라 종합 쇼핑몰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상품이 많으면 고객도 많아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종합몰은 상품이 많아지는 만큼 관리해야 할 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곧 배우게 됩니다.
미국과 한국을 잇는 가족 물류 네트워크
쇼핑몰을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 사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미국에서 상품을 구입해 한국 고객에게 전달하기까지 안정적인 물류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제가 직접 매장과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구매하고, 상태를 확인하고, 여러 주문을 하나의 큰 박스에 모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시 고객별로 상품을 나누고 개별 포장한 뒤 택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 중요한 역할을 맡아준 곳이 형부가 인수해 운영하던 종로의료기였습니다.
마침 오빠도 형부와 함께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미국에서 물건을 모아 보내면 한국에서 오빠와 직원들이 상품을 하나씩 확인한 뒤 고객에게 다시 발송해 주었습니다. 반품이 들어오면 한국에서 먼저 받아 수거하고 정리하는 일까지 맡아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미제다는 결코 저 혼자 만든 쇼핑몰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제가 발로 뛰며 상품을 사고 보내고,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물건을 받아 고객에게 전달했습니다. 로스코리아와 미제다, 그리고 형부가 운영하던 종로의료기가 하나의 팀처럼 연결되어 움직였습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직원도 많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준 덕분에 미제다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도움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미제다는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시절 함께 고생해 준 가족들에게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한 재기와 새로운 시작
그 무렵 남편 역시 미국에서 다시 의료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가든그로브에 '종로메디칼서플라이'를 열었습니다. 미국 의료기 시장의 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달랐고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당시 저희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한번 삶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엄마와 가족들을 만나고 미제다 쇼핑몰 제작까지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비타US 실패로 가라앉아 있던 제 마음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정말 다시 해볼 수 있겠다.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의 좋은 물건을 제대로 소개해 보자"는 기대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공개된 미제다에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주문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문 알림이 울릴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낯선 미국 땅에서 다시 시작한 저희 부부에게 주문 하나하나는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종합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손길과 문제를 필요로 했습니다. 주문은 들어오는데 막상 매장에 가보면 상품이 없고, 같은 브랜드라도 매장마다 재고가 달랐습니다. 인터넷에 상품을 올리는 것보다 주문받은 물건을 실제로 구하는 일이 더 어려운 날도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미제다의 진짜 생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업노트 #10
상호는 고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제다'는 미국 물건을 모아 놓은 곳이라는 의미를 비교적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브랜드 이름은 화려한 표현보다 고객이 한 번 듣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할 수 있는 명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사업의 기회는 고객이 겪는 불편함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신용카드로 미국 사이트에서 결제하기 어렵고, 한국으로 직접 배송해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 불편함을 대신 해결해 주는 데서 해외 구매대행이라는 사업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는 전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데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과정을 대신 해결해 주는 데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사업은 결국 물류와 운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현지 사입, 상품 검수, 국제 배송, 국내 재포장, 고객 응대와 반품 처리까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쇼핑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주문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실제 상품이 고객에게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미제다를 시작하며 저는 화면 속 쇼핑몰보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물류 시스템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다음 이야기
세련된 모습으로 문을 연 미제다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베크롬비 티셔츠 한 장, 코치 가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미국 곳곳의 백화점과 아울렛을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고, 픽업 시간 전에 맞춰 돌아오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해 허탕을 치는 날도 많았습니다. 주문이 늘어날수록 기쁨보다 책임감이 더 커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화려해 보였던 미제다 뒤에서, 직접 발로 뛰며 물건을 찾아야 했던 미국 현지 바잉(Buying)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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