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해 종로까지, 병행수입 명품시계 사업 성장기 [OUR K STORY #14]
OUR K STORY #14
지난 이야기에서는 병행수입 시계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에 오리지날워치를 시작하고, 시계에 대해 하나씩 공부하며 사업을 키워 나갔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오리지날워치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 번 등록한 인기 모델은 꾸준히 판매됐고, 미국의 공급처에 필요한 시계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픽업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식도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의류와 신발을 판매할 때처럼 매일 백화점과 아울렛을 돌아다니며 재고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고, 마진도 훨씬 좋았습니다.
사업은 분명 이전보다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주문이 늘어날수록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시간으로 살았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 있었지만, 고객은 대부분 한국에 있었습니다.
한국 고객들의 문의와 주문 전화를 받으려면 자연스럽게 한국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했습니다.
한국이 한창 낮일 때 미국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상담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까지만 받기로 정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미국에서는 새벽 1시나 2시쯤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매일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까지 고객 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주문을 정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공급처를 돌며 시계를 구입해 포장한 뒤 한국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고객의 전화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채팅으로 간단히 문의를 주고받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전화 한 통이 곧 상담이었고, 그 상담이 그대로 주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070 인터넷전화를 미국 휴대전화로 착신해 놓았습니다.
장을 보러 가도 전화가 왔고, 운전 중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식당에 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외출했을 때도 시계에 관한 문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생활이 반복되면서 늘 잠이 부족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아도 혹시 전화를 놓친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기만 봐도 긴장될 정도로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판매하다 보니 고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매장이 있나요?”
“직접 보고 살 수 있나요?”
“실물을 착용해 보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온라인 판매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나가 오리지날워치의 첫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사업을 위해 한국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향하는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한 사업이 잘되어 한국에 매장까지 열게 된다는 사실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뒤 마주해야 할 개인적인 현실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미국에서 함께 지내며 마당의 감과 오렌지를 따 드시는 것을 좋아했던 친정엄마는 기억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언니가 모시고 지내다가 더 이상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결국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예전처럼 저를 또렷하게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늘 막내딸인 저를 가장 예뻐해 주셨던 엄마가 제 얼굴을 낯설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업은 가장 잘되어 가고 있었지만, 제 인생의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조금씩 저를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매장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슬픔을 마음 한구석에 누른 채 다시 사업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종로 봉익동 디아망을 선택했습니다
매장 위치로 선택한 곳은 종로구 봉익동의 보석상가 디아망이었습니다.
당시 종로는 대한민국 귀금속 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디아망에는 다이아몬드와 각종 고급 보석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모여 있었고,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 교통도 편리했습니다.
주변에는 시계 수리점들도 많아 A/S를 처리하기에도 좋은 위치였습니다.
보석을 판매하는 매장은 많았지만, 시계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은 저희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객이 예물과 보석을 보러 오는 곳에서 정품 명품시계까지 함께 비교하고 구입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앞두니 걱정도 컸습니다.
임대료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달 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는 잘되지만 매장에도 손님이 올까?’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지금까지 번 돈까지 잃는 것은 아닐까?’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고객들은 이미 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방문할 수 있는 매장을 원했습니다.
저는 두려움보다 고객의 요구와 사업의 가능성을 믿기로 했고,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언니와 을지로를 누비며 매장을 만들었습니다
매장을 계약한 뒤에는 인테리어라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품시계를 판매하는 매장답게 고급스러워 보여야 했지만, 인테리어에 큰돈을 쓸 만큼 여유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꾸며야 할지 막막해하던 저를 도와준 사람은 늘 제게 큰 힘이 되어 주던 언니였습니다.
언니와 저는 을지로 일대를 며칠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간판부터 직접 디자인과 제작을 맡겼습니다.
쇼윈도 유리에는 명품시계 전문점 같은 분위기가 나도록 시트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시계를 진열할 유리 쇼케이스도 매장 크기에 정확히 맞춰 제작했습니다.
조명 하나, 상담용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까지 발품을 팔아 직접 골랐습니다.
비용은 최대한 아끼되 매장만큼은 허술해 보이지 않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이곳이라면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믿고 살 수 있겠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언니와 함께 을지로 골목을 누비며 하나씩 준비한 끝에, 작지만 품격 있는 오리지날워치 매장이 완성되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연결해 운영했습니다
매장을 만든 뒤 저는 계속 한국에만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시계를 공급받는 곳은 미국이었기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주문과 구매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제가 고객의 주문을 받고 필요한 시계를 공급처에 주문해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국 매장 운영은 오빠가 도와주었습니다.
오빠는 그 무렵 형부가 운영하던 종로의료기에서 나와 독립해 자신의 의료기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빠의 의료기 매장도 디아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고객이 오리지날워치 매장을 방문하기로 예약하면 오빠는 의료기 일을 하다가 디아망 매장으로 와서 문을 열고 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손목에 착용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판매된 시계의 A/S도 주변 수리점과 연결해 처리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상담과 상품 공급을 맡고,
오빠는 한국에서 매장 응대와 배송, A/S를 맡았습니다.
완벽하게 체계화된 회사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역할을 나누며 미국과 한국을 연결하는 운영 방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가족의 도움과 종로의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오리지날워치의 매장을 계속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작은 매장 앞에 줄이 생겼습니다
매장을 연 뒤 고객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정품인지 여러 번 확인하며 망설이던 고객들도 매장에 들어오면 표정부터 편안해졌습니다.
직접 시계를 손목에 차 보고,
거울 앞에서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다른 모델과 비교하며 천천히 결정했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예물시계를 보러 온 예비부부들이 많았습니다.
남성 고객이 여러 모델을 비교하며 한참 고민하다가도 마지막 선택은 곁에 있던 예비 신부의 한마디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시계가 더 잘 어울려요.”
“이 디자인이 오래 차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남성 고객은 다시 한번 시계를 바라본 뒤 대부분 예비 신부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시계는 단순히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고르는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작은 매장 안에 손님이 가득 차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주말이면 고객들이 밖에서 기다렸다가 차례로 들어오는 풍경까지 생겼습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오리지날워치가 실제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폐 계수기가 돌아가던 전성기
매출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습니다.
매장에는 고가의 시계와 판매 대금을 보관하기 위해 커다란 금고를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판매가 너무 잘되면서 금고 안에 현금을 정리해 넣는 일도 쉽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매일 정산할 때마다 손으로 지폐를 세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지폐 계수기를 따로 구입했습니다.
영업을 마친 뒤 조용해진 매장 안에서 계수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촤르르륵.’
‘촤르르르륵.’
그 소리는 단순히 돈을 세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밤낮을 바꿔 가며 전화를 받았던 시간,
딸과 함께 한국에 나와 매장을 준비했던 시간,
언니와 을지로를 누비며 발품을 팔았던 시간,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서 서로 역할을 나누어 뛰었던 가족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
오리지날워치는 그렇게 제 사업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매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실수로 잃을 수 있는 금액과 책임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습니다.
창업 노트 #14
온라인에서 잘되던 사업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일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비싼 임대료가 두려웠고, 매장에 손님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계속 매장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의가 아니라 시장이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오리지날워치 매장은 고객이 느끼던 불안을 해결해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정품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시계를 보여주고 손목에 착용하게 해주는 것이 더 강한 신뢰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사업 확장에는 매출뿐 아니라 운영 인력과 역할 분담, 재고 관리, 보안과 배송까지 함께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전성기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시작됐지만, 그 성장을 오래 지키기 위해서는 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오리지날워치의 전성기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고객에게 보내던 400만 원짜리 오메가 씨마스터가 택배 접수 직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빠와 저는 밤늦도록 택배 터미널의 CCTV를 확인하고 창고와 작업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시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 고가 시계의 배송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오메가 씨마스터 분실 사건과 직배송, KTX와 고속버스 수하물까지 이용해야 했던 고가 시계 배송 전쟁을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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