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원짜리 오메가 시계가 사라진 날 | 병행수입 명품시계 배송사고 실화 [OUR K STORY #15]
OUR K STORY #15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살얼음판 같은 생활
‘오리지날워치’ 매장을 연 뒤부터 제 삶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미국 영주권 신분이었던 저는 매장을 직접 운영하기 위해 매년 약 6개월씩 한국에서 지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편이 시계를 구입해 한국으로 보내는 일을 맡았고, 한국에서는 제가 매장을 운영하며 손님을 응대했습니다.
당시 제가 머물던 곳은 인사동의 작은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예전에 생활하던 상가 옥탑방은 이미 세를 주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머무는 동안 지낼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저는 먼저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급한 주문과 배송 상황을 확인하고, 밀려 있던 업무를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야 요양원으로 가서 엄마를 모시고 왔습니다.
제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엄마와 집에서 함께 지내고 싶었습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요양보호사 아주머니를 따로 모셨고, 한 가지를 거듭 부탁드렸습니다.
“아주머니, 엄마를 집에만 계시게 하지 마시고 날씨 좋은 날에는 꼭 바람도 쐬어 드리고 산책도 시켜 주세요.”
제가 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엄마가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매는 제 바람과는 상관없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매장에 다녀온 사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둔 채 잊어버리셔서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혼자 집을 나가셔서 몇 시간 동안 온 동네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사업도 중요했지만, 그 시절 제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것은 엄마였습니다.
그래도 매장의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매장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미국에서 남편이 구입한 시계들은 큰 박스에 담겨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시계가 매장에 도착하면 저는 제품을 하나씩 검수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고객 상담을 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포장하고 배송하는 일까지 직접 처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큰 박스는 단 한 번도 분실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긴장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매장에 도착한 시계를 국내 고객에게 하나씩 배송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했습니다.
오메가, 브라이틀링, 태그호이어 같은 고가 시계들은 단 한 점만 분실돼도 손실이 컸습니다.
그래서 택배회사에도 여러 차례 문의했습니다.
“고가의 시계를 보내는데 별도로 보험을 가입할 방법은 없을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고가 물품을 위한 운송보험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반 택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용물을 알아볼까 봐 송장에도 ‘오메가’ 같은 제품명은 적지 않았습니다.
내용물을 최대한 알 수 없게 표시하는 것이 그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날, 사라진 오메가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문받은 오메가 시계를 꼼꼼히 검수한 뒤 포장을 마쳤고, 늘 오시던 택배기사님께 물건을 전달했습니다.
평범한 하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사장님, 방금 가져간 물건이 집하 기록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기사님이 매장에서 물건을 가져가셨는데, 집하장에 들어간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오빠와 함께 택배회사 집하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집하장 바닥에는 수많은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혹시 다른 상자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차량에 잘못 실린 것은 아닌지 직원들과 함께 박스를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CCTV도 살펴봤습니다.
처음에는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 잘못 놓였거나, 전산 입력이 늦어진 것뿐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시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오빠와 저는 빈손으로 집하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몇백만 원짜리 시계 한 점을 잃어버린 것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두려웠던 것은 이런 일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날은 단순히 물건 하나를 잃어버린 날이 아니었습니다.
고가 상품을 취급하는 사업이 얼마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지 온몸으로 배운 날이었습니다.
배송 사고 이후 달라진 선택
그 사건 이후 저는 고가 시계를 보낼 때 일반 택배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 고객에게는 가능하면 직접 매장으로 방문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지방 고객에게는 KTX 특송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한 배송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직접 물건을 전달해 주는 사람을 통해 보내기도 했고, 고객이 기차역이나 터미널까지 나와 시계를 받아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배송비는 훨씬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과 손도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이 훨씬 안전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한 번.
한국 매장에서 고객에게 전달될 때 또 한 번.
명품시계를 판매한다는 것은 두 번의 긴장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객에게서
“시계 잘 받았습니다.”
라는 연락이 와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배송보다 더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배송 방법을 바꿨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무렵 시장에서는 더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병행수입 전문 쇼핑몰이 하나둘 생겨났고, 고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같은 제품의 가격을 쉽게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티쏘와 해밀턴 같은 브랜드는 몇만 원의 가격 차이만으로도 주문이 다른 곳으로 넘어갈 만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매출은 계속 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업이 아주 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만큼 이익이 남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제품을 구입해 한국으로 들여오면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내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판매한 뒤에는 사업 운영비와 각종 세금을 부담해야 했고, 연말에는 종합소득세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판매 금액은 계속 커졌지만 실제로 손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반면 제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고가 재고를 보유하는 부담, 환율 변동, 배송 사고, 반품 가능성, 가격 경쟁까지 모두 사업자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개인사업자로 이 규모를 계속 감당하기 어렵겠다.’
그 생각은 결국 제 사업 구조를 다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업노트 #15
사업이 커질수록 매출보다 위험을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고가 상품은 한 번의 배송 사고만으로도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었고,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매출이 늘어도 실제 이익은 기대만큼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사업은 많이 파는 것보다 오래 살아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다음 이야기
배송 사고 이후 고가 시계를 전달하는 방법은 바뀌었습니다.
주문도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매장은 점점 더 바빠졌고, 주변에서는 사업이 잘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통장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파는데 왜 돈이 없지?"
그 질문의 답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오리지날워치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많이 팔아도 돈이 남지 않았던 이유를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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