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을 산 엄마, 건물주가 되다
OUR K STORY #7
미국 이민을 준비하며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지난 이야기에서는 종로의료기가 창업 이후 가장 큰 전성기를 맞았지만, 저희 가족은 미국 영주권 승인을 계기로 가장 큰 선택 앞에 서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종로의료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떠날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저희는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영주권을 받았다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한국에서 일군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다시 창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종로의료기를 형부에게 넘기다
마침 그 무렵, 저희 형부께서 저희 사업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습니다.
과거 잠실 롯데월드 건설 붐 당시에 지하상가에서 사업으로 돈을 잘 벌고 계셨던 형부는, 온라인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종로의료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던 시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때였으며 오프라인 매장 중심에서 누구나 온라인 쇼핑몰로 눈을 돌리던 대전환기였습니다.
특히 의료기 사업은 마진이 좋고 전문적인 상담 능력이 필요한 분야였습니다.
이미 고객과 브랜드를 확보한 종로의료기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과 온라인 판매 기반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매우 컸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희는 형부에게 종로의료기를 넘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년 동안 밤낮없이 키워 온 사업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무엇을 먹고살까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지만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미국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미국에 다녀올 때마다 저는 꼭 부탁했습니다.
"재준아빠, 미국가면 한인신문 좀 많이 가져와."
남편은 미국에서 돌아올 때면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같은 한인신문을 한 아름 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식탁 위에 신문을 펼쳐 놓고 몇 시간씩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장사를 하는지,
무슨 사업이 잘되는지,
미국에서는 어떤 기회가 있는지.
작은 정보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매일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신문에는 식당,
세탁소,
리커스토어,
마켓,
가게 매매 광고가 빼곡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저희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늘 같은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종로의료기를 해보자."
처음에는 막연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업종을 찾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새로운 시장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했습니다.
상가건물의 건물주가 되다
사업을 정리한 자금과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양천구 목2동에 작은 상가건물을 구입했습니다.
매매가는 6억 8천만 원.
은행 대출 1억 5천만 원을 더해 마련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건물이었습니다.
IMF로 모든 것을 잃고 빚더미에 앉아 절망했던 저희 부부가 다시 일어나 상가 건물주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감격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건물은 강서구 보건소에서 육교를 건너면 바로 양천구로 이어지는 등촌시장 위쪽에 자리한 4층 상가주택이었습니다.
1층에는 카센터와 부동산이 입점해 있었고,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매달 임대료가 들어오는 든든한 자산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그 건물을 사기까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파트를 살 것인가.
상가건물을 살 것인가.
당시 언니와 형부는 잠실 아파트를 가지고 계셨고 이미 가격도 많이 오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낡은 잠실 아파트보다 매달 월세가 들어오는 상가건물이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왜 그렇게 비싸게 살까.'
'차라리 내 건물이 훨씬 낫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제 부동산 안목의 한계였습니다.
그 시절의 잠실은 대세 상승장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재건축과 주변 개발이 이어지며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되었습니다.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동산은 지금 눈에 보이는 낡은 외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 지역의 인프라와 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미래 개발 계획'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저희가 매입한 양천구 상가도 참 좋은 위치였지만, 잠실이 가진 거대한 개발 호재와 파급력에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 미래 가치의 차이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경험을 후회로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업과 투자 모두 현재보다 미래를 보는 사람이 기회를 먼저 잡는다는 사실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가 건물은 저희 부부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종로의료기를 통해 만들어 낸 첫 번째 사업의 결실이었고,
IMF의 빚더미에서 다시 일어섰다는 인생의 증거였으며,
낯선 미국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가장 든든한 자산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날 마지막 준비
건물을 마련한 뒤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말 한국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싸고,
특히 그 무렵 한국에서는 김치냉장고가 막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걸 구하기 어렵겠지.'
그래서 당시 가장 좋은 김치냉장고를 구입해 이삿짐에 함께 실었습니다.
가구와 살림살이도 하나둘 정리하며 필요한 물건들은 배편으로 먼저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해운회사에서 나온 커다란 트럭에 우리 가족의 삶이 하나둘 실려 떠나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제 떠나는구나.'
엄마를 두고 떠난다는 것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친정엄마였습니다.
출국 전날 밤.
엄마와 마주 앉아 짐을 싸다가 결국 서로를 붙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긴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업도,
집도,
교회도,
친구들도 모두 뒤로한 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와 더 큰 세상을 향한 꿈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창밖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익숙한 거리.
한강.
겨울 하늘.
모든 풍경이 마지막처럼 느껴졌습니다.
엄마는 언니네가 모시기로 하고 잠실로 가셨습니다.
홀로 남겨질 엄마에 대한 걱정과 한국에서의 익숙한 일상,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 식구들,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뒤로한 채 떠나야 한다는 허전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저는 창밖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눈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로의료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미국에서는 또 어떤 사업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사업은 장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공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다시 창업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자신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만 품고 저희 가족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다음 이야기
12월의 겨울, 영어 한마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도착한 LA 공항.
세리토스의 낯선 집에서 시작된 미국 이민 생활.
영어도 낯설었고,
문화도,
생활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저희 부부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무엇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그 질문은 곧 저희의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 이민 첫날, 우리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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